2016년 1월 30일 토요일

잭의 행복한 이야기보따리

잭의 행복한 이야기보따리편집부
알버트가 병에 걸렸습니다. 브라운 씨 부부는 알버트가 워낙 건강했기에 기운이 쭉 빠진 채 있어도 단순히 감기인 줄 알았지, 큰 병에 걸렸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다 알버트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고 나서야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예사로운 병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대수술을 받은 후 집으로 온 알버트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지내야만 했습니다. 끝을 알 수 없는 긴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알버트는 언제 나을지 알 수 없는 병과 오랫동안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알버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치료비와 약값이 많이 들기 때문에, 가장인 브라운 씨는 조금도 쉴 수 없었습니다. 아침에 일찍 나가고 밤늦게 들어오다 보니 가족의 얼굴을 마주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아내인 브라운 부인의 얼굴에는 한동안 웃음기가 사라지고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건강했던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호전될 조짐이 보이지 않아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근심 가득한 얼굴을 알버트에게 보이면 좋을 것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습니다.

잭 역시 한동안 침울했습니다. 저녁이 되면 일을 마치고 돌아와 즐겁게 놀아주던 아빠는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고, 형 알버트가 아픈 후로 엄마의 모든 관심이 형에게만 쏠리는 것 같아 외로웠습니다. 특히, 학교에서 심술보로 소문난 마크가 괴롭힐 때면 어디선가 달려와 해결해주던 형이 곁에 없는 것이 가장 슬펐습니다.

심술보 마크는 알버트가 학교에 나가지 못한 후로 잭을 더욱 괴롭혔습니다. 자신을 두려워해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여느 아이들과 달리, 잭은 형만 믿고 입바른 소리를 했습니다. 그 모습이 영 거슬렸는데 알버트가 없으니 이때다 싶었던 것이지요. 잭이 구멍 난 팔꿈치에 천을 덧댄 카디건을 입고 가면 가난하다고 놀리고, 스쿨버스를 탈 때면 잭의 뒷자리에 앉아 어깨를 툭툭 건드리고는 안 그런척 딴청을 피우는 건 예사입니다.

그래도 잭은 참아야 했습니다. 방패막이가 되어줄 형이 없으니까요. 형에게 마크의 소행을 일러바치고 싶었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안 그래도 아픈 형이 괜히 마음만 불편할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대신 학교에서 있었던 일 중에 좋은 이야기만 들려주었습니다.

“형, 오늘 미술시간에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어. 다가오는 어린이 미술대회에 참가해보라며 추천까지 해주셨어.”
“체육관에서 형이랑 같은 반인 필립 형을 만났어. 형의 주특기인 원숭이 흉내내는 걸 못 봐서 아쉽대.”
“오늘 급식에 형이 좋아하는 미트볼이 나왔는데 정말 맛있었어. 형을 위해 몇개 챙겨오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어 아쉬웠어.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만나면 형이 나 좋아하는 음식을 챙겨주곤 했잖아. 그때가 그리워….”


특히, 형을 안심시켜주기 위해 마크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꾸며내서 말하곤 했습니다.

“형, 오늘은 마크가 형 안부를 물었어.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고 하던걸?”
“마크가 스쿨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나에게 웃으며 인사를 했어. 그래서 나도 웃으며 잘 가라고 했어.”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침대로 달려와 그날 있었던 일을 재잘 거리며 풀어내는 잭을 볼 때마다, 알버트는 자신도 학교에 다니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잭의 이야기는 생동감이 넘쳤습니다. 어떤 때는 과장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특징을 살려 성대모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알버트는 그런 잭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잭이 식탁 위에 던져 놓고 간 가방을 정리하던 브라운 부인은 잭과 알버트의 웃음소리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다 잭의 가방 안에서 카드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잭과 가장 친한 친구인 톰의 생일 초대장이었습니다. 두 형제의 이야기가 끝났는지 알버트의 방문을 닫고 거실로 나오는 잭에게 브라운 부인이 물었습니다.

“내일이 톰의 생일이니?”
“네. 그런데 저는 그냥 안 가려고요. 톰에게 초대받은 친구가 많아서 저 하나쯤 빠져도 상관없을 거예요.”
“그래도 톰은 너의 절친한 친구잖아. 알버트 때문이라면 걱정 말고 다녀와. 그곳에서 알버트에게 해줄 재미있는 얘깃거리가 생길지도 모르잖니?”


잭은 아픈 형을 두고 자신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눈치 챈 엄마가 관심을 가지며 계속 설득하자, 잭은 못 이기는 척 톰의 초대에 응하기로 했습니다.

톰의 집은 듣던 대로 부자였습니다. 커다란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궁궐 같은 대저택이 펼쳐졌습니다. 축구장만 한 앞뜰, 널찍한 수영장, 일류 요리사들이 만든 맛있는 음식….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잭은 그런 톰이 은근히 부러웠습니다. 톰의 집에 비하면 자신의 집이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학기 초, 잭은 톰이 좋은 학용품을 가지고 올 때마다 심술보 마크에게 빼앗기면서도 아무 말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용기 내어 “마크, 톰을 괴롭히지 마”라고 한마디 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둘은 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잭은 좋은 옷, 좋은 학용품을 갖고 있는 톰이 부자라는 것은 알았지만 어느 정도인지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톰의 집에 가서 두 눈으로 확인하고 보니 괜히 톰과 자신이 비교가 되었고, 비교를 하니 주눅이 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잭은 톰의 생일파티에 다녀온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있을 형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느낀 그대로를 말하기보다는 형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골똘히 생각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습니다.

“저 왔어요, 엄마.”
“응, 그래. 톰의 생일파티는 즐거웠니?”
“네, 그럼요.”
“알버트가 아까부터 너 오기만을 기다리던데, 어서 가보렴.”


잭은 여느 때처럼 식탁에 가방을 벗어두고 형에게로 갔습니다.

“형, 기분이 어때?”
“당연히 좋지. 너도 좋아 보이는데? 어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봐.”
“흠흠, 알았어. 톰의 생일파티에 초대된 사람은 총 열 명이었어. 나, 앤디, 제이콥, 그리고 형이 모르는 우리 반 친구 일곱 명. 마크는 여전히 톰을 괴롭히기 때문에 초대받지 못했어.”
“마크 고 녀석, 내가 나아서 학교에 가면 호되게 혼내줘야겠어.”
“톰의 집은 정말 으리으리했어. 마치 동화 속에나 나오는 집 같았지. 사실, 쪼끔 부러웠어. 내가 갖지 못한 걸 톰은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도 톰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었어. 그것도 아주 많이.”
“예를 들면?”
“톰의 집에 넓은 수영장이 있다면, 나에게는 수영장보다 더 넓은 바다에서의 추억이 있어. 형, 기억 나? 재작년 뜨거운 여름날 우리 가족 모두 바닷가로 놀러 갔었잖아.”
“가면서 아빠의 고물 자동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삼십 분 동안 차를 밀고 가야했지.”
“킥킥! 맞아, 맞아. 그렇게 힘들게 바다에 도착해 오후 늦게까지 물장난 치며 노느라 바다에서 나올 줄 몰랐지. 정말 재미있었어.”
“계속해봐.”


“그리고 음…. 톰의 집에 갔더니 일류 요리사가 만든 맛있는 음식도 아주 많았어. 특별히 톰의 이름을 새겨서 만든 케이크는 정말 부드럽고 맛있었지. 그런데 음식을 만들어서 날라주는 요리사의 표정이 내내 무표정이었어. 그때 엄마가 생각났어. 우리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 때 늘 즐거운 표정으로 콧노래를 부르는 엄마의 표정과 완전 반대였으니까. 갑자기 엄마가 만든 쿠키가 먹고 싶은 걸 꾹 참았지. 게다가….”
“게다가?”
“나에게는 있지만 톰에게 없는 결정적인 건, 톰에겐 이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어줄 형이 없다는 거야.”


잭과 알버트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잠시나마 톰을 부러워했던 생각은 깨끗이 사라지고, 잭의 마음속은 행복으로 가득 찼습니다. 형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려고 했던 말이 자신에게도 크나큰 힘을 준 것입니다.

그렇게 웃는 사이, 알버트의 건강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열리는 잭의 이야기보따리는 알버트를 날마다 웃게 했습니다. 그 웃음은 브라운 씨 부부에게도 이어졌습니다. 형제가 우애 있게 지내는 모습은 부모에게 기쁨과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잭의 이야기를 들으며 얼른 나아서 학교에 갈 의지를 키워가던 알버트는 마침내 건강을 되찾아, 다시 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마크, 잘 있었냐? 내 걱정했다고? 잭에게 들었어. 고맙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마크에게 알버트는 찡긋 웃으며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저 멀리서 친구 필립이 다가오자 자신의 주특기인 원숭이 흉내를 내며 반겼습니다. 둘은 손바닥을 높이 들어 마주 치며 끌어안았습니다. 그때 톰이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알버트 형! 학교에 온 것을 축하해요. 내년 생일엔 형도 꼭 초대할게요.”
“오케이. 혹시 마크가 괴롭히거든 언제든 말해. 혼쭐을 내줄 테니.”


알버트는 만나는 친구, 선후배마다 활기찬 얼굴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잭은 그런 형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알버트가 자리를 털고 일어난 후에도 잭의 행복한 이야기보따리는 닫힐 줄을 몰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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